대승불교에서의 여래장사상 성립과 사상적 의의 : 네이버 블로그
이때부터는 어려운 반야의 지혜보다는 자비가 보다 깊이 있게 전개되었으며, 나아가 중생 모두에게도 성불(成佛)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종교적 실천으로서 자비의 측면을 새롭게 부각시킨 여래장사상은 중생의 신행(信行)을 새로운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다. 교의 이론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시대의 사상적 특징은 주체 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불교는 무아를 설해 주체를 부정하는 듯한 교의적 표현을 지녔지만 그것은 주체 문제를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도리어 깊은 성찰을 거듭한 결과였다. 대승불교운동의 전개는 인도 종교사에 있어서 힌두교 운동과 서로 통하는 관계에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는 힌두교 운동의 일환이라고도 평가되고 있다.
여래장의 의미를 『보성론』에서는, 첫째 일체 중생은 성장하여 여래로 될 소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래의 태아이다. 둘째, 중생들에게 있어서는 여래의 성격이 아직 발휘되지 않고 여래의 태내에서 자고 있다. 그러나 그 잠자고 있는 태아는 여래이며 그것은 진여이다. 세째, 중생은 번뇌 때문에 자기에게 잠재하고 있는 여래의 성격을 태아처럼 감추어서 표면에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여래장 즉 ‘여래이어야 할 태아’는 결국 중생에 있어서 번뇌에 덮혀서 나타나지 않는 무량번뇌소전(無量煩惱所纏)되어 있는 ‘여래이어야할 인因 또는 본질’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래를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보게 되면 그것은 곧 법신과 동일시된다. 법신 사상은 대승불교에 있어 구체화된 것이지만 원시불교에 있어서도 법의 관념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법 즉 진리 중시의 불교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사상은 중관사상과 유식학으로 대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처럼 여래장의 先在性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마음이 미혹에 빠져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래장연기가 설해진다.
- 어려운 반야의 지혜보다는 자비가 깊이 있게 전개되었으며, 중생 모두에게 성불(成佛)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 원효는 여래장사상이 가장 잘 정리되고 집약되어 있는 『대승기신론』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 그래서 속으로 볼 때 부처.여래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부처로 현실화된 존재는 아닌 것이다.
- 둘째, 중생들에게 있어서는 여래의 성격이 아직 발휘되지 않고 여래의 태내에서 자고 있다.
- 여래장은 특징적인 사상임에도 그 사상의 성격상 전반적으로 그다지 조직된 교의를 형성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마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수작용(受).추상작용(想).의지작용(行).인식작용(識)을 가리킨다. 스팸 게시물이 확대 생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구 및 사용 제한기간을상세하게 안내해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모두가 행복한 인터넷문화를 만들기 위한 네이버의 노력이오니 회원님의 양해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무아(無我)는 아집을 끊은 것이지만 ‘아(我)’의 관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아(我)’를 불성이라 이름붙인다.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융합을 설하고, 여래장 즉 알라야식의 사상을 전개한 것은《능가경》이며, 뒤에 나온《밀엄경》이 있다. 여래장의 융합을 설하고, 여래장 즉 알라야식의 사상을 전개한 것은《능가경》이며, 뒤에 나온《밀엄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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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래야식을 통하여 우리가 처한 생사의 세계가 열반의 세계로, 중생이 부처로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생사와 열반 중생과 부처는 근원적으로 분리되어 있는가? 혹은 그 근원은 동질적인 것이 다만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에 있어서 다른 것인 양 분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긍정적인 답변을 우리는 불성 또는 여래장 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성불의 근거가 중생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경우에나 자기철학의 개진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지금 나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우리 뒤에 올지 모를 눈 밝은 선지식들의 판단을 위해서는 그 모든 자료들이 다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교 주류의 가르침은 마음(心)을 식(識)과 동의어라고 설한다. 그리고 불교 주류의 가르침은 오온 외에 절대로 나라는 실체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불교의 믿음은 여래장이나 불성이나 일심에 대한 믿음보다는 초기경이 강조하고 있는 불.법.승.계에 대한 믿음이면 충분하다. 법신의 개념은 대승불교에 있어 색신(色身)과 법신(法身)이라는 이신설(二身說)로 먼저 나타난다.
진여와 여래장은 우주의 모든 사물이 지닌 참된 상태이며, 부처의 원천이며, 깨달음의 근거이다. 그것이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는 시간이나 공간과 관계없는 깨달음 자체이지만, 움직일 때는 인간의 형상으로 삶의 일상적인 방식과 양상을 취한다. 그러나 이론의 전개과정에서 여래장은 두 가지 측면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우선 여래장을 깨달음 자체인 법신과 구별하여,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상태를 여래장이라 하고, 깨달으면 법신이라고 부른다.
이중 최후의 구경각은 망심이 처음 일어날 때에 마음에 그 초상(初相. 生相)이 https://kampo-view.com/ko-kr 없는 것인 줄 깨달아서 미세한 망념까지도 다 여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 역시 본각과 다르지 아니하며 본각 또한 진여심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여래장이란 원명을 타타가타가르바(tathagatagarbha)라 하여 여래태(如來胎)로도 번역된다.
여래장의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한 이해와 회통에 있어서도 원효는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 즉, 그는 여래장사상의 선언으로 윤회의 중생들이 스스로 여래장임을 자각하고 깨달은 중생의 길, 일심의 길을 택할 때 그들 모두가 본각의 세계로 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주고자 하였다. 그의 여래장사상의 근저에는 『기신론』의 각(覺)의 논리가 뒷받침되어 있다. 이에 본지 논설위원이며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인 각묵스님도 논평문을 보내왔다.
본지는 향후 이평래 교수와 각묵스님이 반론을 제기하면 지면을 통해 계속 의견을 반영할 계획이다. ① 우선 佛陀될 수 있는 性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확신하고② 스스로 그릇된 길을 걸어 왔음을 크게 뉘우치며 ③ 누구와 수행에 의하여 成佛할 수 있음을 확신하며 ④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그 노력에 의하여 근본 자리에 되돌아갔을 때 여기에는 始. 本의 구별이 없어지고 淨法의 진여계만 혼도 드러나게 될 것이니 이것이 淨法緣起의 究意點이며 如來藏을 말하는 目的이다. 이와 같이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고 번뇌는 객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데서 발단된 여래장사상은 『여래장경』에서 ‘일체중생실유여래장(一切衆生悉有如來藏)’이라고 천명한 뒤부터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여래장사상은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고 번뇌는 객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여래장경』에서 ‘일체중생실유여래장(一切衆生悉有如來藏)’이라고 천명한 뒤부터 여래장사상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어려운 반야의 지혜보다는 자비가 깊이 있게 전개되었으며, 중생 모두에게 성불(成佛)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여래장사상은 『대반열반경』과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원효는 여래장사상이 가장 잘 정리되고 집약되어 있는 『대승기신론』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여래장 사상의 성립은 그 학설의 내용으로 보아 대승의 공사상을 이어받아 해탈의 주체인 우리들 마음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되었다.
공여래장.공진여는 번뇌가 0%(空)라는 말씀이고, 불공여래장.불공진여는 지혜와 자비가 100%(不空)라는 말씀이다. 인(因)으로서의 여래장(불성)과 과(果)로서의 여래장(불성)으로 풀이한다. 인으로서의 여래장을 잘 갈고 닦으면 과로서의 여래장이 된다. 또 부처님은 중도에 의해 ‘我가 있는 것(有我)’과 ‘我가 없는 것(無我)’을 설하는데, 我란 여래장의 의미로서 이것을 가리켜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인도의 뿌네대학에 다니면서 힌두교를 굳게 믿는 교수들 밑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여래장사상의 성립과 사상적 의의
우리는 여래장계 경론에 그렇게 오해될 여지가 있는 개념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개념도 그 전체의 의미구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여래장계 경론의 핵심개념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성론》에서 말하는 ‘여래장의 세 의미’의 연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 종교적 실천의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이제 여래장사상의 ‘자성청정심 객진번뇌염’의 명제는 우리에게 자기완성의 끝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불교계에서 유력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불교 철학에서도 이 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두 사상의 영향력을 가장 잘 담은 사상으로 여래장 사상을 들 수가 있는데, 극단적으로는 여래장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장이라는 것은 반야의 깨달음(空)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며 알라야식 사상의 발전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소위 ‘비판불교’는 여래장의 이러한 전통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아트만론과 유사하다는 측면만 부각하여 ‘여래장은 불교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한계만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적으로 설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래의 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生身이요, 하나는 法身이다. 생신이라 함은 방편으로 중생을 위해서 化生한 몸이다.여래의 몸은 상주하는 몸이며, 깨뜨릴 수 없는 몸이며, 잡식하지 않는 몸이니 곧 법신이다. ② 여래장사상 제 2기 경전 보성론(4∼5c 성립 견해)에 이르러 그 思想的 體系가 定立 됨으로써 大乘佛敎의 한 학파적 성격을 띠고 조직화된다. 그러나 아직도 煩惱所染에 관한 考察 (즉 무슨 이유로 煩惱에 물들게 되었나?)하는 문제는 충분치 않다. 여기서는 아직까지 如來藏思想의 이상적인 측면 즉 本性淸淨과 마음의 淨化에만 중점을 두고 추구하는 체계에 머물고 있었다.→돈오적 입장의 선풍 이 시기에는 大乘藏儼經論, 佛性論등이 조직되었다.
여래장 사상이 나온 것은 죽음의 불안에 떠는 낮은 근기(根機, 과학이 덜 발달된 시기)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이다. 모든 중생, 그 속에 일부로서 존재하는 인간들이 사실 모두 여래장이다. 여래로 태어날 수 있는(부처가 될 수 있는) 태아를 수태(受胎)하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물론 특정 교파의 주장이 특정한 시대에 등장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성향이나 시대정신을 고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래장 사상이 나타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특히 이것이 중국불교의 주류가 된 데는 이 사상이 그 시대 중국의 통치자들과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에 더 어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유전인자(DNA)가 있기 때문에 같다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DNA도 연기로서 생긴 것이고, 무아이며 무상이며 불변이 아니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으며 부처님 말씀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만일 불성이나 여래장이 불공이요, 존재의 배후에 일심이 상주불변한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면, 여래장 계열의 경론은 스스로가 불교이기를 포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불교이해가 수승한 것이라 외친다. 그리고 그들은 여래장에는 공여래장(空如來藏)과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이 있다고 말하였다. 만일 여래장이 불공(不空)이라 한다면, 평천창 교수의 말처럼 이것은 공을 무아와 연기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적멸한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에서 전자를 더러움에 싸여 있는 진여 즉 유구진여(有垢眞如)라 하고, 후자를 더러움이 없는 진여 즉 무구진여(無垢眞如)라 한다. 이러한 입장으로 인하여 여래장 사상과 유식 사상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양 사상을 조화 통일시키려는 『능가경』, 『대승기신론』 등의 경론이 다수 제작되고 마침내 여래장 사상은 유식설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여래장사상이란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다’ 즉, 중생은 여래를 감추고 있다는 사상이다.다시 말해서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주장이다(一切衆生 悉有佛性). 이 여래장사상의 배경으로서는 우선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들 수 있으니, 대승이전 아함경전에서 설해지고 있는 심정설(心淨說)을 이어받은 것이다. 불성(佛性,buddha dha︣tu)이란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불(佛)의 인(因), 부처가 되는 인이라고 하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성불의 가능성 곧 중생자체가 가진 능력이다. 셋째는 ‘여래의 태(胎)’이니 자라면 여래가 된다는 의미로서 여래의 태아(tatha︣gata garbha) 이다.
인도 대승불교에 있어서 중관과 유식사상은 2대 사조로 인정되고 있다. 여기에 제3조류로 나타난 것이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이다. 여래장(tatha︣gata garbha)사상이 대승불교 중에 하나의 학설로서 위치하게 된 것은 중국에 와서이다.